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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인생의 나침반 제5화: 하우스는 집이 아니다 – 잃어버린 '홈'을 찾아서

by 관리자 범부 2025.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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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와 홈

따스한 햇살이 드는 거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나누는 식탁, 아이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방.

우리는 '집' 하면 으레 이런 풍경들을 떠올립니다.

사전적 의미로 '집'은 가족이 함께 살며 살림을 하는 건물이나 공간을 뜻합니다.

단순히 비바람을 막아주는 물리적인 구조물을 넘어, 사랑과 온기, 유대와 안식이 깃든 특별한 장소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서 '집'은 더 이상 그 순수한 의미의 '안식처'로만 불리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뉴스와 대화 속에서 '집'은 부동산 시세, 대출 이자, 재개발 투자, 전세가 폭등이라는 단어들과 함께 언급됩니다.

'내 집 마련'은 더 이상 따뜻한 보금자리를 만드는 꿈이 아니라, '벼락거지'가 되지 않기 위한 '재테크'의 필수 요소로 변질되어 버렸습니다.

콘크리트와 벽돌로 지어진 '하우스(House)'는 많아졌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이 기댈 수 있는 '홈(Home)'은 점점 사라져 가는 듯한 아이러니한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경제 발전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우리는 물질적인 풍요를 얻었지만, 그 과정에서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한때는 굳건했던 가정의 의미마저 흔들리고, 3대가 함께 사는 모습은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희귀한 풍경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진정 무엇을 잃어버렸고, 무엇을 되찾아야 하는지, 진정한 의미의 '집'과 '가정'에 대해 깊이 성찰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 사회의 고도 경제 성장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물질적 풍요는 분명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편리하고 윤택하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돈'이라는 가치가 우리 삶의 최우선 순위로 자리 잡는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이 지배하는 가치관은 '집'이라는 개념에도 깊숙이 스며들었습니다.

집은 이제 사는(buy) 공간이 아니라, 살리는(make money) 수단이 되었습니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다)'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며, 사람들은 평생을 빚에 허덕이면서도 '내 집 마련'에 뛰어듭니다.

더 이상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이 아니라 '자산 불리기'의 수단이 된 집은, 순식간에 수억씩 오르내리는 투기판의 상품이 되어버렸습니다.

투기적인 이익을 쫓아 주거지를 자주 옮기며, '전세 난민'처럼 떠도는 삶은 현대인의 비극적인 자화상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집값'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속에서 '가정'의 의미 또한 퇴색되어 가는 듯합니다.

과거에는 부끄럽게 여겨졌던 이혼은 이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보편적인 현상이 되었고, '졸혼(卒婚)'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결혼마저 등장했습니다.

물론 개인의 행복을 위한 선택은 존중받아야 하지만,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가정 공동체가 지니던 본래의 역할과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과거처럼 3대가 모여 사는 대가족은 이제 거의 사라졌고, 핵가족을 넘어 1인 가구의 비중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부정적인 파급 효과도 큽니다.

가정은 단순한 주거 공간이 아니라,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이자 '최초의 학교'였습니다.

윗사람을 공경하고 아랫사람을 사랑하는 법, 형제자매와 더불어 살며 양보하고 협력하는 법, 갈등을 조율하고 사랑을 나누는 법 등, 사회 구성원으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덕목과 유대감을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배우고 익혔습니다.

하지만 가정의 형태가 변화하고, 개개인의 독립성이 강조되면서, 이러한 사회화 기능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젊은 세대에게 '독립'은 이중적인 의미를 지닙니다.

자녀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독립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되었지만, 자산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의 자녀들에게는 이 독립이 '경제적 속박'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적은 월급에서 임차료가 차지하는 비율은 엄청나게 크고, 이는 곧 자산 축적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벽이 됩니다.

자산가인 집주인들은 그들의 '하우스'를 통해 더 많은 소득을 올리지만, 반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그 '하우스'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든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극화는 물질적인 것을 넘어, 사람들의 마음속에 깊은 좌절감과 박탈감을 심어주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정치적 동물'이라고 정의하며, 가정(oikos)이 국가(polis)의 근간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그의 『정치학』에서 가정은 생존과 번영을 위한 기본 단위이자, 시민적 덕성을 함양하는 첫 번째 공동체였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강조했던 그 '오이코스'의 의미를 잃어가며, 단순히 물리적인 '하우스'만을 쫓는 현대판 시시포스가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영어 단어 '하우스(House)'와 '홈(Home)'이 가진 의미의 차이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 하우스(House): 건축물로서의 집, 즉 벽과 지붕으로 이루어진 물리적인 구조물을 의미합니다. 몇 평짜리 아파트인지, 어떤 자재로 지어졌는지, 시세가 얼마인지 등의 물리적이고 경제적인 가치에 중점을 둡니다. '내 집 마련'은 대부분 이 '하우스'를 소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 홈(Home): 사랑과 유대, 소속감과 편안함이 있는 심리적이고 감성적인 공간을 의미합니다. 가족이 함께하는 추억,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온기, 힘들 때 돌아와 쉬어갈 수 있는 안식처로서의 의미가 강합니다. '집으로 간다(Go home)'는 단순히 건물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으로 돌아간다는 뜻을 내포합니다.

서양의 속담에 "Home is where the heart is (마음이 있는 곳이 곧 집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홈의 진정한 의미가 물리적 공간이 아닌, 정서적 유대와 안정감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동양에서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습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으로, 이 역시 가정이 단순히 건물이 아니라 '화목'이라는 보이지 않는 가치로 채워져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을 '나-너(I-Thou)' 관계를 통해 존재를 인식하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즉, 다른 존재(너)와의 진정한 만남과 관계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형성되고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것입니다.

'홈'은 바로 이 '나-너' 관계가 가장 밀접하게 형성되는 공간입니다.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너'라는 존재로 깊이 다가서고, 서로의 존재를 온전히 받아들일 때 비로소 그 공간은 물리적인 하우스를 넘어선 진정한 홈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하우스'에 대한 집착이 너무 커져, 정작 '홈'의 가치를 잃어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재테크 수단으로서의 하우스에만 몰두하다 보니, 가족 간의 대화가 줄어들고, 각자 자신의 방에 갇혀 소통이 단절되며, 함께하는 시간이 사라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값비싼 하우스는 얻었을지 몰라도, 그 안에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진정한 홈을 잃어버리는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고대 로마의 격언 중에는 "Homo homini lupus (인간은 인간에게 늑대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무한 경쟁 사회에서 타인을 적대시하는 인간 본성을 보여주지만, 본래 가정은 이러한 늑대 같은 세상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주는 유일한 울타리였습니다.

그 울타리가 무너질 때, 우리는 사회라는 냉혹한 들판에서 더욱 고독해지고 맙니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하우스'의 홍수 속에서 진정한 '홈'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은 있습니다.

'하우스'는 돈으로 살 수 있지만, '홈'은 돈으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홈'은 오직 우리의 노력과 사랑, 관심으로만 지어 올릴 수 있는 '마음의 건축물'입니다.

아무리 낡고 작은 하우스일지라도, 그 안에 사랑과 배려, 소통과 이해가 있다면 그곳은 그 어떤 궁궐보다 따뜻한 '홈'이 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크고 값비싼 하우스일지라도, 그 안에 온기가 없고 가족 간의 단절만 존재한다면 그곳은 차가운 '콘크리트 상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다시금 우리의 시선을 물질적인 '하우스'에서 내면의 '홈'으로 돌려봅시다.

  • 관심과 대화: 가족 구성원들이 서로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집시다. 휴대폰은 잠시 내려놓고, 눈을 마주 보며 이야기합시다. 식탁 위에서 나누는 소박한 대화가 홈을 지탱하는 가장 튼튼한 기둥이 됩니다.
  • 함께하는 시간: 거창한 여행이나 비싼 외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함께 영화를 보거나, 식사를 준비하거나, 산책을 하는 등 소소하게 함께하는 시간을 만드십시오. 그 시간들이 쌓여 소중한 추억이 되고, 홈을 따뜻하게 데우는 온기가 됩니다.
  • 배려와 이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힘들 때는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는 배려가 필요합니다. 완벽한 가정은 없습니다.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실수도 용납하며, 무조건적인 사랑을 주고받을 때 홈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 나눔의 가치: 형편이 여의치 않아 독립하지 못하고 부모님과 함께 사는 자녀들에게, 혹은 어렵게 독립하여 홀로 외로이 살아가는 친구들에게 '집'을 단순히 '월세 받는 공간'으로만 보지 않는 따뜻한 시선과 배려가 필요합니다. '하우스'를 소유하는 특권층만이 아닌, 모두가 '홈'의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사회적 연대가 중요합니다.

어쩌면 진정한 '내 집 마련'은, 물리적인 하우스를 소유하는 것을 넘어, 내 마음속에, 그리고 내 가족과의 관계 속에 굳건한 '홈'을 지어 올리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외부의 불확실한 재테크 가치에 우리의 행복을 맡기기보다, 우리가 직접 가꾸고 보듬을 수 있는 내면의 가치에 집중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안식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당신의 삶이라는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나침반은 바로 당신의 '홈'입니다.

그 홈이 굳건하고 따뜻할 때, 세상의 어떤 풍파도 두렵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하루, 당신의 '하우스'를 '홈'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작은 노력을 기울이시겠습니까?

그 소중한 노력들이 모여, 이 대한민국에 다시금 진정한 '홈'의 의미가 가득 차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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